"퇴마하려면 관계해야"… 영혼을 파괴하는 종교적 가스라이팅의 실체
사람이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나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할 때, 혹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비극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일 때일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와 신념을 악용해 한 사람의 영혼을 짓밟은 잔혹한 범죄가 또다시 법의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최근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이동기 부장판사)는 강간 및 유사강간, 피보호자간음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70대 무속인이자 승려인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와 함께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의 관련 기관 취업제한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단순한 성범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영적 지배’와 ‘심리적 세뇌’를 통한 인격 실추 범죄입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이 지니는 의미와 함께, 왜 이러한 '종교적 가스라이팅'이 그토록 치명적인지 깊이 있게 파헤쳐 봅니다.

1. 비극의 전말: 구원자를 자처한 악마의 속임수
사건은 202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70대 무속인 A씨는 자신의 제자이자 30대 여성 무속인인 B씨를 상대로 차량과 호텔 등지에서 지속적인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스승과 제자라는 엄격한 위계 관계 속에서 A씨가 피해자에게 주입한 말들은 철저히 피해자의 정신을 마비시키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폭력이었습니다.
"네 몸에 죽은 스승의 영혼이 씌어 있으니 반드시 퇴마해야 한다." "나와 성관계를 맺지 않으면 너는 결국 자살할 것이고, 네 가족들에게도 끔찍한 악재가 닥쳐 말문이 막히게 될 것이다."
A씨는 피해자가 관계를 거부하려 할 때마다 흉기를 동원해 기이하고 위협적인 의식을 치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 관계는 사리사욕이 아닌 정화의 필수 조건"이라는 논리로 피해자를 끊임없이 세뇌했습니다.
피해자는 눈앞의 성폭력보다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영적 재앙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법정에 선 A씨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며 범행을 정당화하려 애썼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을 일축하고 공소사실 전체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2. 법원은 왜 '위력에 의한 범죄'로 엄단했는가?
이번 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법부가 단순히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의 유무만을 따지지 않고, 피해자가 처했던 심리적·종교적 항거불능 상태를 정밀하게 인지했다는 사실입니다. 법원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한 핵심 판단 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신뢰 관계를 악용한 치밀한 계략
피해자는 무속인으로서 정서적·종교적으로 스승인 A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러한 맹목적 신뢰와 위계 구조를 정밀하게 악용하여 범행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보았습니다.
② 공포심 조작을 통한 자율권 박탈
"가족이 죽거나 화를 입는다"는 경고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에게 극심한 패닉을 유발합니다. 여기에 흉기까지 동원한 위협적인 의식이 더해지면서 피해자의 합리적 판단 능력과 성적 자결권은 완전히 무력화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를 명백한 '위력 행사'로 규정했습니다.
③ 죄질의 불량함과 반성 없는 태도
재판부는 *"취약한 상태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반복적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피고인은 피해 복구를 위한 노력은커녕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엄벌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3. 영적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어떻게 사람을 파괴하는가?
이 사건은 전형적인 '그루밍(Grooming)'과 '가스라이팅'이 주술적·종교적 영역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파괴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종교적 가스라이팅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3단계 메커니즘을 거쳐 피해자를 옥죄어 옵니다.
[1단계: 공포 유발] ──> [2단계: 고립 및 독점] ──> [3단계: 경계선 무력화]
"액운·귀신·불행 경고" "오직 나만이 해결 가능" "성폭력을 '의식'으로 위장"
- 불안과 공포의 극대화: "가족이 화를 입는다", "귀신이 붙었다" 등의 프레임으로 상대방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킵니다.
- 외부와의 차단 및 독점적 의존: "이 비밀을 밖으로 발설하면 재앙이 커진다"며 타인과의 소통을 끊고, 오직 자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구원자인 것처럼 위장합니다.
- 도덕적·성적 경계선의 해체: "이것은 불결한 행위가 아니라 영적 정화를 위한 거룩한 과정"이라는 논리를 주입하여 피해자가 성폭력을 피해로 인지하지 못하도록 교란합니다.
이러한 범죄의 가장 무서운 점은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피해자가 "내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극심한 죄책감과 혼란에 시달리며 오랜 기간 외부로 피해를 호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 신념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막으려면
누구나 삶의 고단함이나 갑작스러운 불행 앞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심리적 취약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존 대상이 종교인이든, 무속인이든, 혹은 전문 상담가이든 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 건강한 경계선의 중요성: 신체적 접촉을 강요하거나,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불행이나 액운을 들먹이며 협박하는 행위는 정당한 영적 지도나 상담이 아닌 100% 범죄 신호입니다.
- 사법적 인식의 전환과 강화: 최근 사법부가 피해자의 명시적 폭력 저항 여부만을 따지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심리적 주전 관계' 및 '가스라이팅에 의한 항거불능'을 적극 인정하고 있는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변화입니다.
타인의 불행과 신념을 미끼로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려 한 범죄자에게 내려진 이번 징역 5년 선고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종교적 심리 지배 범죄에 엄중한 경고를 날린 중요한 판결입니다. 우리 사회는 신념이라는 거룩한 이름 뒤에 숨은 심리적 폭력에 대해 더욱 날카로운 시선과 촘촘한 법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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