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중문화사의 커다란 버팀목이자, 수십 년간 우리 곁에서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더없이 따뜻한 아버지의 얼굴로 함께했던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 선생이 향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과 방송계에 따르면 고인은 2026년 10월 29일 밤, 가족과 지인들의 슬픔 속에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지난해 허리 수술 이후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14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KBS 1TV 《한국인의 밥상》 마이크를 내려놓고 재활에 전념해 왔으나, 최근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며 끝내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전 국토가 슬픔에 잠긴 지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예술가이자 따뜻한 이웃이었던 고인의 67년 연기 일생과 삶의 궤적을 차분히 돌이켜봅니다.

1. 청년 연출가에서 무대 위의 거목으로: 67년 연기 여정의 시작
많은 이들이 최불암 선생을 TV 화면 속 연기자로 기억하지만, 그의 뿌리는 본래 '무대 뒤의 연출가'였습니다.
1939년 인천 제물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고와 서라벌예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거치며 연극 예술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당초 연출을 꿈꿨던 그가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 무대였습니다. 이후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탄탄한 발성과 깊이 있는 연기 내공을 다졌습니다.
1967년 KBS 특채 탤런트로 방송계에 첫발을 디딘 고인은 데뷔 초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당시 20대의 젊은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 역할을 중후하게 소화해 내며 방송 관계자들과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어진 1969년 MBC 개국 드라마 《역풍》에서도 노인 역을 맡는 등, 나이를 뛰어넘는 중후함과 깊은 감정선은 그의 전매특허가 되었습니다.
2. 대한민국 대중문화사를 새로 쓴 두 개의 거대한 수작
최불암이라는 이름 석 자를 전 국민의 가슴속에 각인시킨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입니다. 이 두 작품은 단순한 TV 드라마를 넘어 한국 현대 사회의 풍속도이자 국민적 위안이었습니다.
🚔 한국형 수사극의 기틀을 마련한 《수사반장》 (1971~1989)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안방극장을 지킨 《수사반장》에서 고인이 맡은 '박영한 반장'은 냉철한 범죄 소탕자가 아니었습니다. 범죄의 그늘에 숨겨진 인간적인 슬픔과 사회적 그늘에 함께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한 수사관'이었습니다.
고인의 이 같은 진정성 있는 연기는 범죄 예방과 경찰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 명예 경찰로 위촉되었으며, 2024년에는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 계급을 부여받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이 시대 모든 이들의 고향, 《전원일기》 양촌리 김 회장 (1980~2002)
22년간 방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고인이 연기한 '김 회장'은 대한민국이 가장 그리워하고 존경했던 아버지의 대명사였습니다.
가족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밭을 일구며, 자식들의 허물을 품어주던 김 회장의 모습은 당대 수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며 허허롭게 터뜨리던 특유의 "파하~" 웃음소리는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따뜻한 청량제였습니다. 이 웃음은 후일 1990년대 친근함의 상징이었던 '최불암 시리즈'라는 대중문화 현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3. 스크린과 무대, 교양까지 아우른 만능 예술인의 삶
최불암 선생의 예술적 스펙트럼은 TV 드라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영화, 연극, 시사교양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깊이 있는 울림을 전했습니다.
- 영화 및 연극: 《영자의 전성시대》(1975), 《왕십리》(1976), 《바람불어 좋은날》(1980),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70~80년대 한국 영화의 금기이자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쳤습니다. 2018년에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를 통해 25년 만에 친정인 연극 무대로 돌아와 관객들과 호흡하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 한국인의 밥상 (2011~2024): 14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어르신들의 삶과 소박한 한 끼에 담긴 이야기를 온화한 시선으로 풀어냈습니다. 푸근한 식탁 앞에서 건네는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안방극장에 깊은 온기를 더해주었습니다.
4. 인간적인 인연들: 김혜자 선생과의 콤비, 김민자 여사와의 순애보
🤝 시청자마저 속았던 최고의 파트너, 김혜자
고인과 가장 긴 세월 연기 호흡을 맞춘 인물은 단연 배우 김혜자 선생이었습니다. 1969년 《개구리 남편》을 시작으로 《전원일기》, 《궁》(2006)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부부로 합을 맞추며, 실제 부부로 오해받을 만큼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선보였습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다음 대사를 알 수 있다던 두 사람의 호흡은 한국 방송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소중한 자산이었습니다.
💖 운명처럼 찾아온 단 하나의 사랑, 김민자 여사
실제 삶에서 고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단 한 사람은 아내이자 동료 배우인 김민자 여사였습니다. KBS 드라마 《정동마님》에 출연 중이던 김민자 여사를 보고 첫눈에 반한 고인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속 방송사를 KBS로 옮길 만큼 뜨거운 구애를 펼쳤다고 합니다.
4년간의 연애 끝에 1970년 결실을 맺은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격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으로 귀감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떠나는 길에도 고인의 곁을 지키며 눈물 흘리던 김민자 여사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했습니다.

5.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 어린이와 이웃을 품은 사회공헌가
최불암 선생은 1992년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정계에 발을 딛기도 했으나, 제15대 총선 이후 정치판을 떠나 다시 대중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정치를 넘어 진정으로 마음을 쏟았던 분야는 바로 사회공헌이었습니다.
미아 찾기 캠페인과 난치병 어린이 돕기 방송에 앞장섰던 고인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 및 (사)제로캠프 이사장을 역임하며 평생을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익 향상에 바쳤습니다.
이러한 고인의 높은 뜻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이번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엄수됩니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이수성,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 각계 인사가 장례위원으로 참여하여 한평생 이웃을 사랑했던 대예술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입니다.
- 빈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 유족: 아내 김민자 여사, 아들 최동녘, 딸 최동비 씨

🕯️ 마치며: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참 아버지'
최불암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단지 수많은 흥행작이나 수상 기록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를 아우르며 우리 마음을 보듬어주었던 따뜻한 온기와, "파하~" 하고 웃어주던 그 친근하고 넉넉한 품이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는 희망을, 외로운 시절에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었던 '국민 아버지' 최불암 선생. 그분이 남긴 깊은 울림과 연기 열정은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동안 국민들에게 전해주신 노고와 사랑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올립니다. 편안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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